최근 어떤 기관 실무자와 상담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고액기부자를 위한 예우표를 더 정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기부 금액별로 혜택을 명확히 하면, 더 큰 기부를 이끌어낼 수 있겠죠?”
그 말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예우는 중요하다.
기부자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그들의 헌신을 존중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우가 곧 기부의 동기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기부자를 오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기부자를 위한 '서비스'는 어디까지 유효할까?
기부자를 '고객'으로 대하면 익숙해진다.그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대우하고,
만족하게 만드는 것.이런 접근은 일정 부분까지는 효과가 있다.
기부자도 인간이기에,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분명 한계가 있다.
서비스로 보답하는 기부는 결국 기부자 개인이 받는 '혜택' 안에서만 움직인다.
그 금액은 1천만 원일 수도 있고, 많아야 1억 수준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이상은 ‘내가 받는 것 이상은 줄 수 없다’는 무의식적 한계에 부딪힌다.
기부자는 ‘성과’를 원한다
고액기부자, 특히 초고액기부자는 서비스보다 성취를 원한다.
내가 만든 학교, 내가 세운 병원, 내가 변화시킨 세대.그들은 ‘혜택’이 아닌 ‘보람’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보람이 진짜일 때, 5억, 10억, 그 이상의 기부도 가능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등급표’가 아니라 ‘비전’이다.
예우표가 아닌 성과지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 기부로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그 변화 안에 나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가?”
그 물음에 진심으로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초고액기부의 문이 열린다.
진짜 기부는 거래가 아니다
기부를 서비스처럼 다루면, 기부자도 소비자가 된다.
하지만 기부자는 고객이 아니다.
그들은 동역자이고, 공동설계자이며, 가치 실현의 주체다.
그러니 기억하자.기부는 대가를 요구하는 행동이 아니라,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에 초대 받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고액기부자다.
최근 어떤 기관 실무자와 상담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고액기부자를 위한 예우표를 더 정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기부 금액별로 혜택을 명확히 하면, 더 큰 기부를 이끌어낼 수 있겠죠?”
그 말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예우는 중요하다.
기부자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그들의 헌신을 존중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우가 곧 기부의 동기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기부자를 오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기부자를 위한 '서비스'는 어디까지 유효할까?
기부자를 '고객'으로 대하면 익숙해진다.그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대우하고,
만족하게 만드는 것.이런 접근은 일정 부분까지는 효과가 있다.
기부자도 인간이기에,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분명 한계가 있다.
서비스로 보답하는 기부는 결국 기부자 개인이 받는 '혜택' 안에서만 움직인다.
그 금액은 1천만 원일 수도 있고, 많아야 1억 수준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이상은 ‘내가 받는 것 이상은 줄 수 없다’는 무의식적 한계에 부딪힌다.
기부자는 ‘성과’를 원한다
고액기부자, 특히 초고액기부자는 서비스보다 성취를 원한다.
내가 만든 학교, 내가 세운 병원, 내가 변화시킨 세대.그들은 ‘혜택’이 아닌 ‘보람’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보람이 진짜일 때, 5억, 10억, 그 이상의 기부도 가능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등급표’가 아니라 ‘비전’이다.
예우표가 아닌 성과지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 기부로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그 변화 안에 나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가?”
그 물음에 진심으로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초고액기부의 문이 열린다.
진짜 기부는 거래가 아니다
기부를 서비스처럼 다루면, 기부자도 소비자가 된다.
하지만 기부자는 고객이 아니다.
그들은 동역자이고, 공동설계자이며, 가치 실현의 주체다.
그러니 기억하자.기부는 대가를 요구하는 행동이 아니라,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에 초대 받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고액기부자다.